옛날에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임금이 있었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하여 보았지만 치료되지 않았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울증 증상이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을 아는 점성학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그들에게 자문했습니다. 그러자 점성학자들은 아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의 외투를 한 벌 빌려다 입으면 우울증이 치료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왕은 신하들을 동원하여 1년 만에 바로 그 행복의 주인공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행운의 주인공은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빌려줄 외투 한 벌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왕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고, 또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로 임금은 우울증이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치료되었고,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고민과 근심, 걱정 등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등에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짐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주어진 행복을 찾고, 그 행복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십시오.
토머스 코스틴은 저서 The Three Edwards를 통해 14세기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형제지간인 레이놀드와 에드워드가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에드워드가 먼저 공격을 시도해 레이놀드를 붙잡아 뉴커크 성에 가뒀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감옥이 아니라 매우 안락한 공간이었습니다. 빗장을 걸지도, 자물쇠를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에드워드는 레이놀드에게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면, 그가 누렸던 지위와 권리를 모두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레이놀드는 감옥에서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감옥의 문이 다른 문들보다 좁았고, 레이놀드는 매우 뚱뚱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가 훨씬 더 쉬웠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방법은 살을 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약간의 빵과 물만 먹는 죄수 대부분에겐 쉬운 일이었지만, 레이놀드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레이놀드에게 매일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과 덤으로 향긋하고 달콤한 에일 맥주와 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관대함을 가장한 학대였습니다. 레이놀드는 먹고 또 먹었으며 점점 더 뚱뚱해졌습니다. 레이놀드는 문이 열려 있는 감옥에서 10년을 갇혀 살다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그가 해야 했던 일은 배고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족이란 스스로 넉넉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자족하게 되면 좋은 것들이 함께 따라옵니다. 자족하면 만족하게 되고, 만족하게 되면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게 되면 더 좋은 것들이 따라서 옵니다. 자족하면 행복합니다. 자족하게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자족하게 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에 평화가 깃듭니다.
자족하지 않고 불만(不滿)을 갖게 되면 불평(不平)하게 됩니다. 불평(不平)은 관계에서 불화를 낳습니다. 또한 불행(不幸)을 낳습니다. 불평(不平)이란 한자를 살펴보면 평화가 없는 상태입니다.
불평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고, 관계의 화목을 깨뜨립니다. 불평이 깊어지면 불안해집니다. 불안(不安)은 평안(平安)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불안이란 단어 속에 담긴 한자 안(安)은 평안할 안입니다. 안(安)이란 한자 속에는 "즐기다. 좋아하다. 즐거움에 빠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불안하게 되면 이미 주어진 것을 즐기지 못하게 됩니다.
자족은 본질이고 행복은 비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자족은 본체고 행복은 그림자입니다. 본질에 충실하면 비본질은 따라옵니다. 그림자는 스스로를 만들지 못합니다. 본체인 몸통의 형상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행복의 모양은 자족의 크기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럼 자족이란 무엇인가? 자기 스스로의 만족입니다. 그럼 행복은 언제 어디에서 채워지는 조건일까? 역시 행복도 스스로 만족할 때 채워집니다. 행복한 사람에게 자족하냐고 물으면, 자족하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자족하며 살아간 사람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족과 행복은 같은 뜻인가? 아니면 차이가 있는 것인가? 차이가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까? 자족은 몸통이고 행복은 깃털입니다.
자족은 행복의 모체입니다.
자족은 행복의 본질입니다. 행복은 자족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본질이 아닙니다. 그림자를 잡을 수 있는가? 그림자는 형체가 없습니다. 잡으려고 하면 사라지거나 도망칩니다. 물론 그림자도 잠깐은 머무를 때가 있지. 그 그림자를 손으로 잡았다고 좋아할 때 태양이 가려지면 어떻게 할 건가? 더구나 그림자인 주체가 이동할 때마다 그림자를 잡기 위해 엎어지고 넘어지고 깨지고 자빠지면서 환경 탓, 세상 탓만 할 것인가? 행복은 왜 그림자인지, 본질이 아니고 비본질인지, 이 부분이 정리되어야 진실로 행복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