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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서 칼럼니스트

우주를 방안 가득 끌어 들이는 한국의 창호(窓戶)

창호지 하나로 세상을 가리지만 방안 가득 햇살을 머물게 하고 보름달과 함께 한 이불 덮고 옛정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창호이다. 호랑이가 곶감 이야기를 듣고 ‘걸음아 날 살려라’ 꽁지 빠지게 도망가게 한 곳이 초가집 창호 밑이다. 한국의 집에 설치된 창호는 창(窓)과 호(戶)로 구분된다. 엄밀히 따진다면 창은 햇빛과 바람을 방안에 들이기 위한 구조물이고, 호는 사람이 방에 출입하기 위해 만든 시설물이지만 창호라는 이름으로 명확한 구분 없이 사용되나 서양의 경우에는 ‘door'와 ’window'는 완전히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한국의 창호는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단순히 방안 출입의 기능으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창호에는 한국인의 염원을 표출하고 있다. 그래서 창호의 이름도 다양하다. 먼저 그 기능적인 면으로 창호를 분류하면 여닫이, 마당이, 들어열개 등으로 다양하다.

 

여닫이는 문틀에 돌쩌귀를 박아 창호를 바깥쪽으로 당겨서 열개하는 밖 여닫이가 대부분이다. 이 여닫이 안쪽에는 이중의 창호를 설치하여 추위와 비바람을 막게 하는 미닫이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미닫이는 문틀을 짤 때 가로로 아래위에 홈 대를 만들고 이 홈 대에 창호를 끼워서 좌우로 열도록 하는 문이다.

 

들어열개는 방안의 공간을 우주로 확대하여 방이 곧 밖과 다르지 않음을 나타내는 한국의 독창적인 창호이다. 윗 문틀에 돌쩌귀를 달아 바깥으로 열어젖혀 서까래에 매단 들쇠에 창호를 공중에 들어서 얹는 방법이 들어열개 창호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사방의 들창을 공중에 매달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시원하다. 또 의식을 진행할 때 이 들창을 들어 올림으로써 내부와 외부가 하나가 되는 소통 공간 구조를 가지게 된다. 담양 소쇄원 광풍각(光風閣)은 들어열개 창호를 통해 이름 그대로 햇빛과 바람을 무한정 받아들이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한국의 창호는 살대의 형태에 따라 띠살, 용자살, 빗살, 완자살, 아자살, 정자살, 귀갑살, 귀자살, 숫대살, 꽃살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살대의 문양에 따라 벽사, 부귀, 장수, 영원함 등 한국인의 염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사찰의 꽃살 무늬 창호는 붓다에게 바치는 꽃 공양으로 무수한 꽃들의 잔치가 펼쳐진 연화장세계를 보는 듯하다.

 

창호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었다.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눈(雪) 빛과 반딧불 창으로 글을 읽었다는 ‘형창설안(螢窓雪案)’의 고사에서 비롯된 형창(螢窓). 타향살이 서러운 객창(客窓). 5, 6월 더위에 주렴을 내린 염창(簾窓). 어두운 곳에 빛이 들어오게 한 광창(光窓). 기(氣)가 답답하여 펴지 못하는 북창(北窓). 희망의 상징 남창(南窓). 청산을 바라보기 좋게 들려있는 들창(鑿窓). 여기에서 들창코가 나왔다. 전혀 관계없는 말을 불쑥 내놓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사람에게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봉창(蓬窓)등이 있다. 원래 봉창은 쑥대를 엮어서 만든 창으로 매우 가난한 집을 뜻한다. 장자 양왕편에 공자의 제자인 원헌(原憲)이 매우 가난하여 오두막에서 쑥대를 엮어서 방문을 만들고 깨진 독으로 구멍을 내서 바라지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위로는 비가 새고 아래는 습기가 찬 방에서 바르게 앉아 금슬(琴瑟)을 연주했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여유를 부려보면 어떨까?

 

 

한국의 창호에는 애환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 창호지 하나를 사이에 두고 폐쇄와 개방의 이중적 묘미가 살아 있다. 창호에 꽃잎을 넣어 자연을 담거나 작은 유리 조각을 넣어 밖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옛날 다듬이질하는 그림자와 소리는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고, 촛불 아른거리는 신혼 방을 엿보려는 짓궂은 동네 친구들의 손가락 구멍도 볼 수 있었다.

 

작은 집 푸른 모피에 따뜻한 기운 남았는데/ 矮屋靑氈暖有餘

매화 그림자 창에 가득한 달이 처음 밝았네/ 滿窓梅影月明初

등불 돋운 긴 밤에 향 사르고 바로 앉아서 / 挑燈永夜焚香坐

한가히 인간에서 보지 못한 글을 지었구나 / 閑著人閒不見書

 

궁궐의 벼슬살이 이미 마음을 떠나 무심한데/ 玉堂揮翰已無心

소나무 창가 단정히 앉으니 밤은 깊어 가네/ 端坐松窓夜正深

향로, 물병, 가죽으로 덮은 책상 깨끗하지만/ 香鑵銅甁烏几靜

바람이 전하는 기이한 이야기 낱낱이 찾았네/ 風流奇話細搜尋

 

김시습은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후 지은 시이다. 그가 머물렀던 작은집을 매월당이라 하였다. 방안 깊숙이 들어앉은 달빛, 창호에 어른거리는 매화 향기는 바쁜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금오신화를 쓰고 난 후에 무심히 창가에 앉은 밤은 깊어만 가고 그간 어지럽던 책상마저 깨끗해서 글을 완성한 후 마음의 여유로움을 전한다. 그러나 인간이 듣도 보도 못한 글을 써서 남겼다는 가슴 뿌듯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햇살에 흰빛을 토하고 달밤 소나무 가지, 매화꽃 가지가 어른거리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는 미닫이, 여닫이, 들어열개 등 한국의 창호는 마음이 자연으로 다가가게 하는 멋이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예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부드럽게 우주를 방안 가득 끌어들여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마음의 창이 바로 한국의 창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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