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은 편안하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맞춤 그대로 소통하게 한다. 먼저 고객의 손과 발에 맞추어 불편함이 없게 하고 그다음 눈에 들게 하여 기분을 맞추고, 마음에 들게 하여 행복을 맞추어 준다. 손과 발이 유별나게 열정적인 안성사람들은 안성맞춤의 원조인 안성유기를 만들었고, 쌀농사를 잘 지어 전국 최고의 밥맛을 자랑하고 그 쌀로 술을 담그니 최고의 막걸리가 나왔다. 요즈음 안성은 바우덕이의 줄타기로 관광객의 마음을 맞추고, 안성의 유기는 사람의 눈을 맞추고, 안성의 막걸리와 쌀밥은 팔도사람의 입맛을 맞춘다.
옛날 안성은 지형적으로 삼남(三南)을 연결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축장으로 4세기 이전에는 백제지역, 5세기에는 고구려 영토가 되었으며, 6세기에 신라가 한강유역까지 진출하면서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는 등 삼국, 후삼국의 모퉁이에서 전쟁에 시달리는 고초를 겪었다. 또 안성 주변은 산이 깊어 수많은 도적들의 은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도적들이 칠장사 샘물을 마실 때는 분명 금 바가지였지만 소굴로 가져가면 박 바가지였다.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찮은 바가지에도 탐욕이 앞서니 도적의 욕심을 불심으로 바꾼 혜소국사의 신통력에 감화를 받은 도적은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는 칠현산(七賢山 )칠장사의 이야기나 떠돌이 민초들을 사당패로 거듭나게 한 청룡사 대웅전의 기둥을 보면 민초들의 억센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 조선의 숭유억불로 강제적 환속에 떠밀린 스님들과 오갈 데 없는 천민들은 새로운 생업을 찾아 남사당이 되었다. 당추, 당취, 땡초로 불리는 이들은 기예를 익혀 조선 후기 안성 청룡사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던 남사당패로 새로운 민중 놀이문화를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사당패’라 하여 여자들이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집단에서 출발하였으나, 조선 후기 남자들만의 사당패가 생겨나 남사당패라고 하였다. 구성은 맨 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쇠⦁뜬쇠•가열⦁삐리 등 40여 명 남짓이 한 집단을 이룬 유랑예인집단으로 이들은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천민으로 가족도 거처할 집도 없이 황색기를 앞세우고 전국을 유랑하였다. 이들의 놀이는 상놈의 편에서 양반 세계에 대한 비판을 여섯 마당놀이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과 소통하고자 하였다. ‘안성 바우덕이’로 불리는 박우덕으로부터 시작해 김복만, 이원보, 김기복으로 이어지면서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남사당패는 안성지방 사람들의 끈질긴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안성은 차령산맥에서 이어져 내려와서 드넓은 평야 지대를 이르는 지형적 조건은 벼농사 재배에 적당하며 양질의 경기미가 생산되고 있다. 안성이 쌀이 좋은 이유는 흐르는 냇가의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정약용(丁若鏞)의 『경세유표』 제3권 천관수제(天官修制) 군현분예(郡縣分隸) 조에 “죽산(竹山) 남쪽에 있는 미수(洣水: 속명은 天迷川이다)는 동쪽으로 흘러서 열수(驪興)에 들어가며”라고 하였다. 洣水(미수)를 한자로 풀어보면(破字) 氵(물) + 米(쌀) = 洣로 벼는 물과 함께 있다는 의미를 볼 수 있다. 또 洣水의 속명을 天迷川(천미천)이라 하였다. 天迷川은 天(하늘), 迷(미)=辶(달리다)+米(쌀), 川(내)로 하늘이 쌀을 업고 달리는 냇가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안성은 물이 좋아 하늘을 유혹(天迷)하는 냇가가 있는 동네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렇듯 물 좋고 쌀 좋은 고장에는 당연히 쌀로 만든 술이 좋을 수밖에 없다. 서민의 애환을 달래고 힘든 농사일에 힘을 북돋아 주는 막걸리야 말로 하늘이 내린 감로수(甘露水)로 ‘안성마춤’이라는 브랜드로 생산되는 쌀 막걸리이다. ‘안성마춤 쌀’은 엄격한 품질관리 시스템인 우수농산물인증(GAP)을 획득한 쌀로 ‘안성마춤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텁텁하고 뒤끝이 더부룩하다는 선입견을 없앤 막걸리이다. 막걸리 특유의 향을 줄여 마시기가 부드럽고 감미롭다. 막걸리 한 대접을 쭉 들이키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뱃속이 알싸하여 취기가 맴돈다. 요즈음 웰빙 문화의 흐름에 따라 우리 것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맥주에 밀리고, 소주에 치이며, 양주에 밟혀 제대로 술값을 하지 못하던 막걸리가 하늘을 치솟는 인기를 얻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막걸리는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섭취하는 유기산과 활성 효모가 많이 함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필수 아미노산이 10여 종 함유되어 영양면에서도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적당히 마시면 이보다 좋은 보약이 따로 없을 것 같다.
추억의 대폿집과 왕대폿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노가리와 김치 안주에 양재기 가득 부어 마셨던 대폿집 막걸리. 이렇듯 마을 어귀나 골목에 자리한 선술집을 대폿집, 왕대폿집이라 하였는데 막걸리를 왜 대포라 하였을까? 대포(對匏)는 ‘짝하다’, ‘대하다’는 뜻의 對(대)와 ‘바가지’의 뜻을 지닌 匏(포)로 이루어진 한자말로 ‘바가지와 짝하다’의 의미로 대포집이였다. 또한 포(匏)인 바가지는 술잔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어왔다. 옛날엔 항아리의 술을 뜰 때 바가지로 뜬다. 술을 담는 잔 또한 바가지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왕대포(王對匏)집은 ‘큰 바가지에 담긴 막걸리 집’, 즉 ‘술을 많이 보유한 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익은 『성호사설』 제4권 만물문(萬物門) 주기보(酒器譜)에 술잔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 중 잔(琖)이란 글자의 뜻은 잔( )·잔(盞) 두 글자와 같은데, 작은 술잔이다. 하(夏)나라는 잔(琖), 은(殷)나라는 가(斝), 주(周) 나라는 작(爵)이라 했는데, 가(斝)란 잔은 술이 여섯 되나 든다는 것이다. 두(斗)라는 잔은 술이 열 되나 드는데, 『시경』에 “말처럼 큰 잔으로 술을 마신다[酌以大斗].”라 했다. 포(匏)란 잔은 박(瓠) 따위인데, 『시경』에 “술 마시는데 바가지를 잔으로 쓴다[酌之用匏].”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장유(張維)의 『계곡선생집(谿谷先生集)』 ‘가을날에 특별히 돈시를 찾아가고[秋日訪敦詩別業]’의 시에 보면 “채소밭과 밤나무는 가을 맛이 물씬하고(畦蔬園栗供秋味)/ 닭과 게를 곁들인 풍성한 저녁 밥상(紫蠏黃鷄入晚飱)/ 즐거운 주인의 아담한 정취 얼마나 많은지(更喜主人多雅趣)/ 처마 밑 멍석 깔고 바가지 술 주고받네(茅簷展席對匏樽)”이라 하였다. 이처럼 바가지 술을 대포준(對匏樽)이라 하여 대포는 술 바가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우리는 술을 먹을 때 청탁불문(淸濁不問)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청탁불문(淸濁不問)이란 비싼 술이든 싼 술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말로 술의 질을 따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용되어왔다. 원래 청탁(淸濁)의 의미는 한나라에 기근이 심해서 조조(曹操)가 금주령을 내리자 주객(酒客)들이 술이라는 말을 돌려 청주(淸酒)를 성인(聖人), 막걸리인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고 불렀다는 데서 기인하였다고 『삼국지 위서 서막(三國志魏書 徐邈)』에 전해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눈을 피하는 은어(隱語)는 계속 사용되어 왔다.
지금도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은 집안의 걱정거리다. 이유원(李裕元) 『임하필기(林下筆記)』 춘명일사(春明逸史)에는 술로 사는 남편을 위해 술의 독성을 동물실험을 통해 밝힌 갸륵한 아내가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금석 이존수(李存秀, 1772~1829)는 늘 술로 산다고 온 나라에 소문이 났다. 대부인(大夫人)이 그가 술로 건강을 상할 것을 염려하여 소 창자에 여러 가지 술을 담아 시험해 보니 탁주에는 살이 찌고, 청주에는 손상되고, 소주에는 헐어 터졌다. 이것으로 인해 탁주를 먹게 하였다.” 탁주인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는 결론까지 내리고 남편에게 막걸리 먹기를 권유하였으나 듣지 않아 이존수는 환갑을 넘기지 못하였고 한다.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은 “막걸리 한 잔 마시고 거문고 한 곡조만 탈 수 있다면 내 소원 다 이룬 것 아닌가(濁酒一杯 彈琴一曲 志願畢矣).”라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무슨 일이 그리도 바쁜가? 모내기할 때나 뙤약볕에서 김을 맬 때나 일손을 놓고 냇가에 발을 담그고 천렵을 할 때나, 장가를 들 때나 죽은 이를 위로할 때나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과 함께 울고 웃은 막걸리! 남모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안성 막걸리 한잔으로 잃어버린 추억을 마셔 내 마음을 맞춤 해보면 어떨까? 더불어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가 10월 6일부터 10월 9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이 또한 눈요기 거리로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