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 중에 용(龍)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본 사람도 없다. 그러나 우리 꿈속에서는 많은 용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한다. 그래서 설날의 용꿈은 꿈 중의 최고로 한해의 소원을 모두 다 이룰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사람들이 섣달 그믐날 용꿈을 꾸라는 덕담으로 새로 시작될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특히 올해는 청룡의 해라고 떠들썩하다. 단기(檀紀) 4357년, 갑진년(甲辰年)은 청룡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해라고 한다. 청룡은 동방에 위치하여 머리가 되고, 시초가 되고, 즐거운 일이 되고, 봄의 생명이 되어 길한 경사로움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지게 한다고 믿어왔다.
서양에서는 용을 뱀과 같이 물리쳐야 할 악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동양에서는 신비한 능력과 무궁무진한 조화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상상의 동물로 일찍부터 우리 민족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5세기 초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비문」에 나타난 황룡은 고구려 시조 주몽이 천제지자(天帝之子) 즉 하늘의 아들임을 나타내고 있어 일찍부터 용과 함께하여온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은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유언을 남겨 신라인들은 나라를 지키는 호국정신의 표상으로 용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백제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로 남지 연못의 용과 교통하여 무왕을 낳아 무왕의 부계가 용의 혈통으로, 고려 왕건의 할머니가 용녀(龍女)로 용의 혈통임을 나타내 신의 아들로 권력의 안정과 정통성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요즈음 인기있는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에서 쫓기던 대량원군(현종)이 “왕씨는 용손(龍孫)이다.” 소리쳐 황제의 정통성을 표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 세종의 선조들을 모두 육룡(六龍)에 비유하여 신분 변화의 당위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한 견훤은 용이 되지 못하고 지렁이의 아들로 묘사되는 등등 이러한 전설, 설화에 나타난 용은 통치자의 강력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럴까? 용산(龍山)이 좋다고 용산으로 간 사람도 있다. 일반 백성들은 소박하게 설날에 용꿈이나 꾸어서 한 해 동안 그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뿐인데.
일반 백성들은 이무기, 뱀 등이 여의주를 얻으면 용으로 변화하여 승천하게 된다고 여겨 미천한 백성들도 더 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희망을 용에서 찾았다. 상상의 동물인 용을 자신의 영혼 속에 묻어두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였다. 용의 전지전능함은 나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어 귀면(鬼面)의 문양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정월 초 집에 들어오는 나쁜 잡귀를 물리치려는 의도에서 용의 글씨나 그림을 대문에 붙이는 풍속이 전해 내려오기도 했다. 또 용은 길상의 표현으로 용꿈을 꾸면 높은 벼슬로 나아가거나 재복(財福)이 들어 온다고 믿어 사대부들은 용을 가장 상서로운 존재로 인식하기도 했다. 이러하듯 우리 선조들은 존재하지 않는 용이란 상상 동물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으로 인해 자신의 심적정화(心的淨化)를 이루고자 했다.
그러면 상상의 동물인 용은 어떠한 모습일까? 중국의 옛 책 《광아》에서 묘사한 용은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과 같고, 눈은 토끼와 같고, 귀는 소, 목덜미는 뱀과 같고,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와 같고, 발톱은 매의 발톱과 같으며,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용 그림 가운데 제일 오래된 용은 중국 지안 고구려 고분 오회분 4호묘 천장 벽화(6세기 추정) 황룡으로 《광아》에서 말한 용의 아홉 가지 특징을 잘 표현하였다. 붉은 두 눈의 부릅뜸과 흰 뿔의 상서로움, 입에서 토하는 불의 기운, 몸통은 굵은 누런색과 가는 청색, 주황색, 갈색과 회색으로 오방색을 기본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었다. 또 몸을 둥글게 말아 역동적인 힘을 잘 나타내고 있어 우리 민족의 기상과 용에 대한 상상력의 극치를 이루는 그림으로 미학적으로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 이 황룡은 우주의 중심이자 주관자인 천제의 부름을 받은 존재로 오신수[五神獸: 황룡(중앙),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 가운데 중앙을 나타내는 중심의 동물로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중앙임을 강력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광박물지廣博物志》,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는 용에게는 아홉 마리의 자식이 있다고 하였으니 용의 아홉 마리 자식은 사찰 입구에 용두보당이라는 당간의 꼭대기에는 먼 곳을 바라보는 치문(蚩吻)이 있어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붓다를 기억하게 하였다. 부도와 부도비의 귀부에는 무거운 것을 짊어지기를 좋아하는 패하(覇下), 비면에는 글을 잘 짓는 미비(眉贔)를 새겨 비를 지키고 보호하게 하였다. 또 살생을 좋아해서 장군의 검에 새겨진 애자(睚呲)는 전장에서 승리를 기원하였다. 종(鐘)을 매다는 용뉴에는 고래만 보면 무서워 우는 포뢰(浦牢), 북에는 수우(囚牛)란 용을 그려 소리가 잘 나도록 하였다. 사찰의 명부전에는 폐한(狴扞)을 두어 시왕의 송사를 도와주는 역할을, 전각의 기둥에도 조풍(嘲風)을 조각하여 정사를 돌보는 왕을 외호토록 하였다. 임금이 앉는 용좌(龍坐)에는 산예(狻猊)를 배치하여 최근 거리에서 왕을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용이 권위의 상징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의 용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보단의 청룡과 황룡을 보면 용의 위엄은 사라졌다. 피카소의 그림인가? 아니면 초등학생의 그림인가? 동그랗게 뜬 눈은 무슨 사고라도 칠 듯 장난기가 발동하고, 점박이 무늬 비늘로 한껏 치장을 하였다. 그래도 나는 용이라며 흰 뿔을 자랑하며 웃는다.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끌어안고 몸을 꼬는 등 스킨십(skin-ship)하며 살갑게 지내는 모습은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약 300여 년 전 우리나라에도 알라딘 램프가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김천 직지사 대웅전 보단에는 푸른색 알라딘 램프 안에서 용이 튀어나오는 조각이 있으니 신기하다. 주전자같이 생긴 정병(淨甁) 속에서 작은 백룡 한 마리가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빠져나온다. 고른 이빨, 턱수염, 세운 귀, 흰 용의 뿔, 여의주 등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정병에서 나온 상서로운 기운은 오색 뭉게구름처럼 퍼져 주변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그런데 옆에 보이는 무심한 잠자리는 용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드래곤플라이(dragonfly)라 했던가. 세상에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공평하게 대접받고 사는 세상임을 보여준 듯해서 재미있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용을 경외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직접 타고 부려서 우리를 도와주는 조력자로 인식하였다. 이렇듯 한국의 용은 한국인의 정신을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본 용의 해에 일어난 사건은 992년 거란의 침입 준비, 1232년 몽골의 침입, 1592년 임진왜란, 1952년 한국전쟁 등 어려움이 많은 해였다.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는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추악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갈라 치기, 흑백의 논리로만 세상을 본다면 청룡의 기운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해가 될 것 같다.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며 용을 직접 타고 부리는 고구려인의 기상을 배운다면 어떤 국란도 거뜬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발상의 전환으로 청룡의 상승 기운을 타고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편안해지길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