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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서 칼럼니스트

추위를 이겨낸 매화와 인간

 

남녘에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은 엉덩이를 붙여둘 수 없을 만큼 떠나고 싶다.

아무리 살을 애는 매서운 겨울이라도 한때일 뿐 어김없이 봄은 찾아 든다. 새싹이 움을 트고 잎은 푸른빛으로 고개를 내민다. 자연의 변함없는 질서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지금 당장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면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매화를 두고 “굳센 의지와 지조가 있는 마음이 어찌 철로 된 간장이고 돌로 된 창자〔鉄肝而石膓〕일 뿐이겠는가.” 하였으며, 눈 속에 핀 설중매(雪中梅)를 더욱 어여삐 여겼다.

 

유몽인(柳夢寅)은 「해변(解辨)」에서 나를 묶은 자 누구인가? 란 물음에 “스스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일 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特不肯解 非不得解)”고 하였다. 그렇다. 만약 매화가 추위의 기세에 눌려 꽃을 피우려 하지 않는다면 이미 매화는 봄을 알리는 첫 꽃으로 사랑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람들도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스스로 묶인다면 개인이나 집단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 굴레를 벗어던짐으로써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연감류함(淵鑑類函)』 권6 천부(天部) 풍(風)조에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이란 말이 있다. 소한(小寒)부터 곡우(穀雨)까지의 절기에 스물네 번 꽃 소식을 전하는 바람이 분다는 뜻이다. 꽃바람은 매화를 시작으로 동백, 수선, 서향, 난초, 개나리, 앵두, 목련, 유채 등 24가지의 꽃들을 연달아 피어오르게 한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바람을 매개로 봄이라는 소통의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요즈음 소통하기는 싫고 내 뜻대로 되어야만 그것이 소통이라고 떠들어대는 고집불통의 집단일수록 국민은 내 편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이들이 좀 더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면 살결에 와 닿는 봄바람의 촉감이 매화 향기를 뿜듯 국민을 편안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개성으로 자신의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처럼 사람들이 지닌 개별성과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공감하면 그것은 바로 사람 간의 소통뿐만 아니라 천지 만물과 소통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이루는 원초적인 힘이 될 것이다.

 

 

수많은 매화 시나 그림을 보면 매화는 고목에서 뻗은 새 가지에서 꽃을 피운다. 참으로 운치가 있어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매화를 가꾸는 일에 정성을 들여 중국인들도 감히 따라올 수 없다고 자랑하였다. 매화는 꽃이 아름답지만 나무 등걸은 기굴한 모습의 옹이가 생긴 고목을 사용하였다. 매화 등걸이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은 아니었다. 원래의 모습을 바꾸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요즈음 말로 하면 융합연구의 결과물이다. 산골짜기를 뒤져 오래되고 울퉁불퉁하고 못생기고 구멍이 뚫린 복숭아나무나 살구나무의 그루터기에 새 매화 가지를 접을 붙여 매화 가지가 그루터기에 단단히 붙으면 화분에 옮겨 심어 기이한 멋을 부렸던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질적인 요소를 지닌 두 나무의 접붙임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하였다.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한 미래의 희망을 생각하였기에 멋진 매화분을 곁에 둘 수 있었다. 이렇듯 융합은 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추운 겨울 달빛에 비친 매화를 감상하기 위해 매화 전용 의자를 만들어 완상하였으며 절명(絶命)하는 순간에도 매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였다. 매화를 아꼈던 퇴계 이황(李滉)은 매화를 기르듯 부단히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시를 제자 김명원에게 남겼다.

 

백 번 삶아야 명주실도 희어지고(百練絲能白)

천 번 갈아야지 거울도 밝아지네(千磨鏡始明)

늙은 나조차 배움에 뜻 두었거늘(老夫猶有意)

젊은 그대가 헛된 삶을 살려는가(年少肯虛生)

 

 

매화를 가꾸든지, 공부를 하든, 마음을 단련하든, 부단한 노력만이 향기로운 존재가 됨을 말해주고 있다. 공자가 칭찬한 거백옥(蘧伯玉)이라는 사람은 나이 쉰에 마흔아홉 해의 잘못을 알았고, 예순에 예순 번 변화하였다고 한다. 스스로 변화를 통해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존재가 더 나은 자기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에 “자벌레가 몸을 굽혀 움츠리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하여 항상 변화를 강조하였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참고 견디며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백 번 천 번 소통하여 변화하는 노력을 한다면 매화 향기 가득한 새봄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매화꽃 가지 끝에 정월 대보름달이 둥실 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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