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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필 칼럼니스트

《신편호사(新編虎史) Ⅳ》 -21세기에 새로 엮는 범의 역사

「왕의 DNA, 산군의 새끼 사랑」

   범을 점잖게 ‘산군(山君)’이라 부른다. 산속 임금이라는 뜻에서 범을 가장 높혀 부르는 호칭일 것이다. 16세기 명나라 강남의 문인 왕치등(王穉登)은 『호원(虎苑)』을 편찬하면서 일곱 번째 「위맹(威猛)」편을 두었다. 길짐승 최상위 포식자인 범의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모습이나 이야기를 모았다. 찬사(讚辭)에서도 이른바 ‘산군’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심상을 그리면서 ‘왕의 DNA’가 어떤 것인지 나타냈다. 그러나 남성성을 찬미하는 듯한 가부장적 가치관이 투영된 이야기도 있어 자연세계와 동떨어진 인간문화의 편향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우선 몇 대목 인용하면서 음미해 보기로 한다.

 

      ○ 범은 아이를 먹지 않는다. 아이는 어리숙해서 범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잡아먹을 수가 없다. 아울러 취한 사람을 먹지 않는다. 반드시 깨어나기를 기다려 비로소 잡아먹는다. 사실 깨어남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두려워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범은 개를 먹으면 취하니 개는 범의 술이다.

      ○ 범은 구부러진 길을 가지 않는다. 범을 만난 사람이 구비진 길로 유인해 가면 피해 갈 수 있다.

     ○ 범이 굶주리면 과실 열매를 씹어먹기도 하니 짐승만 고집하진 않는다. 그런데 사람을 먹을 때면 남자는 불알부터 부인은 젖가슴부터 먹지만, 부인의 음부는 먹지 않는다.

    ○ 호표(虎豹)의 새끼는 비록 무늬를 이루지 못 해도 벌써 소 잡아먹을 기세를 지니고 있다.

 

   ◈ 찬양한다: “높은 산 큰 골짜기, 굴에 자리잡아 깊이 몸 숨겼네. 변변찮은 풀일랑 거두지 않으니 여우 토끼들은 남몰래 도망하네. 헌걸찬 무사들과 용이나 송골매 아로새긴 깃발. 요사스런 기운 맑혀서 밝으니 모든 나라 들어와 왕으로 삼는다네.”

 

   동아시아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호표(虎豹)의 위용을 상징하는 담론들이다. 무서움을 모르는 대상은 잡아먹지 않는다든가, 사람이 술 마시듯 개 잡아먹기를 즐긴다든가, 굶주릴 경우에는 짐승만 고집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여성 음부만은 가린다든가, 곧은 길 아니면 사람 먹이를 놓치더라도 가지 않는다든가 하는 모습들은 군자(君子)이거나 상남자(上男子) 그 자체이다.

   그런데 범의 아이콘은 흔히 얼쑹덜쑹 털가죽 무늬로 나타낸다. 호피(虎皮)야말로 범이 범다운 핵심이다. 털이 변변치 않은 범은 ‘스라소니’이다. 우리 속담에 “범 되다가 만 스라소니” “호랑이도 새끼가 열이면 스라소니를 낳는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한국에서는 ‘호랑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범’의 어휘가 쓰였으며, 범은 표범까지 포함하는 ‘호표’의 대체어였다. 다만 범을 세분할 경우에 줄무늬 뚜렷한 ‘줄범’과 동그란 옆전 무늬의 ‘돈범’으로 불렀다. 이들의 아름다운 털가죽은 새끼가 성장해 가며 여러 번의 털갈이를 통해서 완성된다. 사람들은 그 은인자중의 과정에 주목하여 표은(豹隱) 혹은 무표(霧豹)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레 동안 남산 안개비 속에 스스로 갇혀서 굶주림을 견대내며 무늬의 완성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실제 ‘돈범’의 문양은 무신의 갑옷에 활용되기도 했다. 앞 글에서 소개했던 서울 석관동의 의릉(懿陵) 무인상의 뒷면은 아주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범의 털가죽은 인고와 변화의 상징일 뿐 정작 범의 정체성은 기개에 있다. 범 새끼는 자기 몸의 몇 배가 되는 소를 대적하려는 기상을 어려서부터 지니고 있다. 스라소니는 털이 다 자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범의 기상을 타고나지 못하니 스라소니인 것이다. 스라소니는 나무를 잘 타서 사람을 보면 나무 위로 올라가 동태를 살피고, 사람은 옷과 갓을 벗어 나무 중간에 걸쳐놓고 사람을 모으러 자리를 떠난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 스라소니는 사람의 의관을 살피며 우유부단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사람들이 몰려와 잡힐 때까지 나무 위를 지킨다고 한다. 호사 의 편찬자였던 이서우(李瑞雨)가 북변 귀양살이 할 때 채집했던 목격담이다. 범의 위용은 헌걸찬 무사의 몫인 듯도 하지만, 『호원』의 편자는 세상을 평정하고 만방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바람의 원동력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위엄과 용맹은 문무를 함께 구비하고 세상을 향한 원대한 포부까지도 지닐 때 온전한 덕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범의 가족 사랑은 유별나다. 범은 천하의 맹수이지만 부자와 암수의 정에 이끌리면 위엄은 있을지언정 화를 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중국에서는 일찍이 원·명 시대에 <유호도(乳虎圖)>라는 회화 양식에 담았다.1) 수풀 속 까치들이 지저귀는 배경하에 두 마리 범이 새끼들을 이끌고 가고 있으니 그 뜻이 지극히 평화롭다. 그러나 숫컷 범이 앞서가는 뜻은 가족을 지키려는 것이고, 새끼들은 범다운 이빨과 발톱이 온전하지 않지만 소를 잡아먹을 기상을 지녔다.

    중국의 <유호도>는 조선 후기에 다양한 <까치호랑이>로 변신하여 대유행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는 무명의 화가가 그린 민화의 한 갈래로 정착하고 세화(歲畫)로 소비됐다. 조선 민화의 주인공 범은 노한 구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까치가 더 생기발랄하며 범은 어딘가에 놀란 듯도 하고 할 말이 있는 듯도 하면서 나무가지 위 새들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까치+호랑이>의 조합에 범새끼 여럿이 끼어들면 민화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오히려 중국 <유호도> 양식의 충실한 수용일 듯하지만 이 때의 주인공 범은 ‘바보 호랑이’로 등장한다.2) 다음의 꽤나 유명한 그림을 감상해 보는 기회를 갖기로 한다.

 

   

 

 

 

 

 

 

 

 

 

 

 

 

 

 

 

 

 

 

    왼쪽 그림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까치호랑이> 양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선 상단 오른편에 일시와 화공 이름을 적었다. ‘갑술년’을 이 양식이 유행했던 19c후반~20c전반에 적용시키면, 1874년(고종11)이나 1934년(대한민국 임정16)이다. ‘원단’이라면 이 그림은 세화(歲畫)로 그린 것인데, ‘신재현(申在鉉)’라고 이름을 직접 밝힌 것으로 보아서 후자의 개화기 시대의 화공일 가능성이 높다. 또 까치들이 모여드는 상단 중앙에 “범이 남산에서 휘파람 부니 뭇 까치들이 모두 모여든다”[虎嘯南山, 群鵲都會]라고 했고, 범의 등을 타고 노는 범새끼를 ‘슬하손(膝下孫)’이라 표기라 했다. 세 핵심 캐릭터를 따서 작품명을 <작호슬하손(鵲虎膝下孫)>이라 불러 본다.

   이 작품의 범은 인자하기 그지 없는 할아버지 모습이다. 스라소니를 범의 손주쯤으로 귀엽게 그려놓은 것과 맞물린다. 흰 눈섭에다 옆으로 길게 뻗은 수염, 양털처럼 부드럽게 오무리고 발톱을 감추고 있는 네 발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주홍빛 입에 치아는 청년처럼 건재하다. 그 앞에 “바람 타고 천리밖에서 들리니 골짜기 표효 소리에 돌이 갈라지는듯”[風聲聞於千里, 吼蒼崖而石裂]이라고 써놓았다. 범의 위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림 왼쪽 하단 나무 뿌리 쪽에는 “삼산불로초(三山不老草)”라고 적었다. 이 모든 것이 삼신산 선경에서 불로장생하며 이루어지는 일이다. 산군의 가문이나 희소식을 전하는 까치 가족처럼 우리도 아무런 갈등과 장애 없이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염원을 담았다.

   오른쪽 그림은 범 가족의 단란함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냈다. 그림의 정교함이 왼쪽보다 못한 듯하지만 민화의 특징을 더 과감하게 추구했다. 새끼나 어미의 눈에서 바보스러울 정도의 애정이 묻어나온다. 바보 호랑이의 완벽한 출연이다.

     그런데 오른쪽 전서(篆書)로 쓴 그림 설명은 단순치 않다. 조금 전문적인 고증이 필요하다. 글씨 그대로 읽자면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3) 한문 고전을 참고로 한다면 “善主宗彝孝”라고 읽어야 뜻이 통한다. ‘선주’는 『서경』 「함유일덕(咸有一德)」편에서 다음과 같이 제왕의 덕목을 언급한 대목과 관계가 있다.

 

      “덕에는 고정된 스승이 없으니, 착함을 위주로 함이 스승이다. 착함에는 고정된 주의주장이 없으니 협력하여 하나를 이루어 만백성이 모두 ‘위대하도다’라고 말하게끔 하는 일이다.”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통치자는 덕과 선을 베푸는 데 있어 이념과 주의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들어 있다. 오직 협력을 통해 모든 구성원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정치야말로 유일한 스승이며 지향점임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에 종이(宗彝)는 범과 긴꼬리원숭이를 그려넣은 ‘종묘 술잔’인데, 제왕의 제례복에 새겨 넣는 여러 문양 가운데 하나로도 활용된다. 범이 제왕의 신묘한 무공과 혼란 억제력을, 긴꼬리원숭이가 군집생활의 화목과 가족의 효심을 상징한다. 요컨대 <선주종이효>라는 화제(畫題)는 제왕과 같은 산군이 선을 위주로 삼을진대 군주 제례복에 새겨넣는 종묘의 술잔과 같이 효(孝)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림 내용으로 보아서는 스라소니들의 효도보다는 늙은 범의 자애가 넘쳐나는 듯하지만, 자효(慈孝)는 부모자식간의 애정이 상호작용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황제의 시호에 들어가는 문구 가운데 ‘문무’와 함께 ‘자효’가 자주 들어가는 이유는 제왕이라고 하더라도 안팎이 따로 없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윤리를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통치자는 적어도 명분적으로 ‘성왕’이라고 하는 도덕 군주의 이상을 추구해야만 했다.

   명나라 영락제(永樂帝) 주체(朱棣)는 대단한 치적을 이루고 문황제(文皇帝)라는 시호를 받았지만 집권 과정에서나 정복 군주로 활약하는 데 있어 범처럼 무서운 통치자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이 자신처럼 골육상잔의 비극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강력한 군주상을 지니기를 원했다. 훗날 인종(仁宗)으로 보위에 올랐던 장자 주고치(朱高熾)는 성품이 어질지만 유약했다. 아버지 황제는 평소 이를 미워하여 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를 남경에 멀리 두고 소외시켰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연각 한림학사로서 영락제가 신임했던 참모였던 해진(解縉)은 다음과 같은 짤막한 시를 지어 바쳤다.

 

     “범은 백수의 지존이니 뉘 감히 그 노여움을 건드리랴! 오직 부자의 정이 있어 한 발자국에 한번씩 되돌아보네.”

 

   영락제는 이 소리를 듣고 어찌했을까? 그에게도 아들이 가엽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측근을 남경으로 파견하여 주고치를 북경으로 맞아들였다. 이 시의 제목은 <호고중표도(虎顧眾豹圖)>이며 아름다운 풍자시로 평가받았다. 필시 덜 자란 스라소니 여러 마리를 데리고 길을 나선 암숫컷 범의 광경을 그린 <유호도> 계통의 제화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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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나라 신무관(慎懋官) 편찬의  화이진완고(華夷花木鳥獸珍玩考)(만력9, 1581) 권7, <유호도(乳虎圖)> 항목에 상세한 그림 설명이 되어 있다.

2) 정병모, (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다ᄒᆞᆯ미디어, 2011) 「바보 호랑이의 등장」, 198-205쪽 참조. 이 책의 5장 「호랑이가 전하는 우리의 이야기 -까치호랑이」는 범 그림, 범 이야기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 우선 첫 두 글자는 ‘善主’ 혹은 ‘善生’으로 읽을 수 있으나 전체 내용으로 보아서 전자의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선(善)을 위주로 할 것인가”를 언급한  서경·함유일덕편에서 가져온 문자로 보인다. 두 번째 구절은 ‘賨彝’로 되어 있으나 문맥으로 보아 ‘宗彝’의 오류로 판단된다. 마지막 글자는 ‘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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