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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난의 위기에 일어선 3인의 검사(檢事)

필자에게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120여년을 살펴볼 때 가장 위기의 세 번의 순간을 꼽아 보라면 첫 번째가 1905년 을사늑약부터 1910년 경술국치로 이어지는 조선의 멸망과 일제강점기의 시작을 첫 번째의 가장 큰 위기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가 1950년 6.25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대한민국의 공산화 위기가 또 하나의 커다란 위기라 할 수 있으며, 세 번째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부터 시작된 좌편향 사회로의 급속항진 하는 최근까지의 상황이 또 하나의 커다란 국가적 위기라 말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세 번의 절체절명의 국난위기의 순간에 특이하게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세출의 3인의 검사(檢事)가 매 순간마다 등장한 것이다. 정말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해서 팔뚝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러면 3인의 검사가 누구이며, 무슨 공통점이 있으며, 어느 순간에 무슨 일을 하였나,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가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이다.

 

그의 직업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검사다. 1907년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 평화 회의가 개최되자, 고종은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 고저 이상설을 정사로 하고 이준과 이위종을 부사로 삼아 회의에 참석한 세계 여러나라에게 대한제국의 국권 회복 문제를 제기 하고자 하였으나, 외교권이 없는 대한제국 대표의 참석과 발언은 허용할 수 없다고 거절당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끝내 회의참석이 거부되자 7월 14일 이준은 헤이그에서 순국하여 그곳 아이큰다우의 공원 묘지에 묻혔다가 1963년 환국, 서울 수유리 묘지에 안장 되었다.

 

두 번째가 1950년 6.25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남한 내부의 남로당(남조선로동당)을 와해.괴멸시킨 오제도 검사다. 그는 1946년 제1회 판검사 특별임용시험을 합격하고 서울지방검찰청과 대검찰청에서 검사로 1940년대와 1950년대초 반공검사로 활동하였다. 

 

특히 박헌영의 수하 거물간첩 김삼룡과 이주하를 체포하였고, 서울남조선로동당 총책 홍민표를 검거, 전향시켜 남로당원 33만명이 자수하고 전향하게 되었다. 

 

이때 전향한 33만명은 무력에 의한 강제 검거가 아니고 오제도 감사의 청빈한 생활에 감명 받은 서울총책 홍민표의 남로당 내부 설득으로 33만명이 전향하는 일대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오제도 검사의 활약은 결국 남로당의 폭동계획은 실패하고 6.25 한국전쟁은 대한민국과 자유세계의 승리로 끝을 맺게 되는 역할을 일정부분 크게 견인 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가 2017년 대통령 탄핵부터 시작된 좌편향 사회로의 급속항진 하는 최근까지의 상황이 또 하나의 커다란 국가적 위기에 등장한 윤석열 전직검사다.

 

직업인으로 평생 오직 검사로 재직하였고,  2019년 제43대 검찰총장에 올랐으며,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제1야당 후보로 2021년 11월 선출 되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으며, 국가와 국민을 따른다"는 헌법주의자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응용통계학과를 설립했던 인물중 한분인 윤기중 교수이다. 그의 어머니 또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분이다. 보수진영에서는 자유이념을 수호할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며, 기존 정치권에 부채가 없으며, 국가발전과 국론통일, 부정부패 척결을 완수 할 수 있는 적임자로 윤석열을 국민이 정치판으로 불러낸 것이다.

 

위 세가지 사건이 필자가 살표본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120여년을 살펴볼 때 가장 위기의 세 번의 순간인 것이다. 그 때마다 나타나 목숨을 걸고 국난을 극복했거나 극복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 했던 세분의 검사(檢事)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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